정부가 집부자 편에 설 건지, 아니면 중산·서민층 편에 설 건지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공시가격 조기 현실화, 재건축 연한 강화, 주택거래 허가제 등 투기를 잡고 집값을 안정시킬 대책은 많다. 의지의 문제일 뿐,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안재승 논설위원

고강도 주택시장 안정대책인 ‘9·13 대책’ 이후 한동안 안정세를 보인 서울 아파트값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한국감정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11월 둘째 주부터 32주 연속 하락한 서울 아파트값이 올해 7월 첫째 주에 상승세로 돌아선 뒤 10월 셋째 주까지 17주 연속 올랐다.

최근 집값 상승세가 지난해와 다른 점은 강남 4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공시가격 9억원(시가 13억~14억원) 이상 고가 아파트 가격이 유독 많이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서초구 아크로리버파크가 대표적 사례다. 전용면적 60㎡(24평형)가 지난 8월 23억9800만원에 거래됐다. 평당 1억원이다. 같은 층, 같은 평형이 7월 21억1천만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한달 새 2억원가량 올랐다. 반면 지난해에는 집값 급등에 불안을 느낀 예비 실수요자들이 매수세에 가담하면서 지역과 가격대를 불문하고 집값이 전방위적으로 뛰었다.

최근 집값 상승은 저금리 상황에서 부동산 말고는 돈을 굴릴 데가 마땅치 않은 고소득층이 고가 아파트를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거주를 위해 집을 사는 ‘본원적 수요’가 아니라 값이 더 오를 것을 기대하며 투자 목적으로 사는 ‘금융적 수요’다. 주식시장에서 삼성전자 주식을 사두는 것과 비슷하다.

일부에선 어차피 ‘그들만의 리그’인 강남 아파트값에 정부가 신경쓰지 말고 양질의 공공임대아파트 공급 등 중산·서민층을 위한 주택정책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후자는 맞지만 전자는 위험한 발상이다. 강남 집값 상승의 폐해가 크기 때문이다. 과거 수없이 경험했듯이 강남 아파트값 상승은 서울 전역으로 확산된 뒤 수도권과 지방으로까지 이어지기 십상이다. 최근 집값 상승이 아직까지는 국지적 현상에 머물고 있지만 이번에도 이전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둑이 한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또 강남 집값 상승은 중산·서민층에게 박탈감과 좌절감을 안겨준다. 평당 1억원대 아파트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배아픔이 아니다. 공정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분노다. 강남 집값을 잡아야 하는 이유다.

정부는 11월 말 고지서가 날아가는 종합부동산세에 기대를 거는 것 같다. 세율을 올리고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높이는 등 9·13 대책에서 강화된 종부세가 처음으로 부과된다. 세금 부담이 지난해보다 최대 3배까지 늘어난다. 정부는 집부자들이 종부세 무서운 줄 아직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 또한 안이한 판단일 수 있다. 한두달 새 수억원씩 오르는데 종부세 몇천만원쯤이야 감당할 수 있다는 집부자들이 많다. 이제 2년 반 남은 문재인 정부, 조금만 더 견뎌보자며 버티기에 들어가는 분위기다.

정부의 단호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인데, 최근 분양가 상한제를 둘러싼 혼선을 보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민간아파트에도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검토할 때가 됐다”고 밝힌 게 지난 7월8일이다. 그러나 집부자들의 반발과 경제 사정도 고려해야 한다는 기획재정부의 이견에 제동이 걸려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은 지난 22일에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이 29일 관보에 게재됐고 빨라야 다음주 초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이 지정될 것으로 보인다. 4개월 가까이 시간을 끄는 동안 집값이 뛰어올랐다. 개정안 내용도 일부 재건축·재개발에 대해서는 6개월 유예기간을 주고 시·군·구가 아닌 동별로 지정하기로 하는 등 애초 방침에서 대폭 후퇴했다. 갈팡질팡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시장은 ‘집값을 잡을 의지가 약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시행도 하기 전에 약발이 떨어진 셈이다. 김현미 장관도 내년 총선에 마음이 가 있는지 이전만큼 뚝심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혹시 정부가 경제 사정도 나쁜데 집값마저 하락하면 경기 침체가 더 깊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집값으로 떠받치는 경기는 거품이다. 진짜 걱정해야 할 상황은 경기 악화 속에서 지난해처럼 집값 불안이 확산되는 것이다. 중산·서민층의 고통이 배가되고 민심 이반은 불을 보듯 훤하다.

정부가 누구 편인지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 집부자 편에 설 건지, 아니면 중산·서민층 편에 설 건지 보여줘야 한다. 공시가격 조기 현실화, 재건축 연한 강화, 채권입찰제, 주택거래 허가제 등 투기를 잡고 집값을 안정시킬 대책은 많다. 의지의 문제일 뿐,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